뉴스케일파워 UAMPS 프로젝트 좌초이유 분석: 경제성 균열, 비싼 전기, 금리 인상

목차
서론: '게임 체인저'의 예상치 못한 퇴장, 그 의미
21세기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며 차세대 원자력 기술의 총아로 떠오른 소형모듈원전(SMR). 그중에서도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최초로 획득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며, SMR 시대를 현실로 이끌어낼 가장 유력한 선두주자로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들의 야심 찬 첫 상용화 프로젝트인 '탄소 없는 전력 프로젝트(CFPP, Carbon Free Power Project)'는 단순한 발전소 건설 계획을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이론과 설계도 속에 머물렀던 SMR 기술의 상업적 생존 가능성을 증명할 중대한 시금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서부 유타, 아이다호, 캘리포니아 등 6개 주에 걸친 50개 지방 자치 전력 시스템의 연합체인 UAMPS(Utah Associated Municipal Power Systems)와 손잡고, 원자력 연구의 심장부인 아이다호 국립 연구소(INL) 부지에 77MW급 SMR 6기(총 462MW)를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거대하고 중앙집중적인 원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필요한 만큼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분산형 원자력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프로젝트의 초기 리스크를 분담하기 위해 14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CFPP의 성공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23년 11월 8일, 뉴스케일파워와 UAMPS는 공동 성명을 통해 프로젝트의 공식 종료를 돌연 선언했습니다. 기술적 결함이나 해결 불가능한 안전상의 이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주목하던 SMR 1호 프로젝트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멈춰 선 것입니다. 이 소식은 SMR 산업 전체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큰 충격을 안겼고, 이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해 온 각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수많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NRC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선진 기술은 왜 시장의 문턱에서 좌초되었는가? '꿈의 원전'이라 불리던 SMR의 발목을 잡은 보이지 않는 족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CFPP 프로젝트가 좌초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경제성, 수요, 그리고 거시 경제 환경이라는 세 가지 핵심 주제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한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SMR 산업 전체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본론 1: 예상을 빗나간 천문학적 비용: 경제성의 치명적 균열
모든 에너지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근본적이고 냉정한 척도는 바로 '경제성'입니다. CFPP 프로젝트가 넘어야 할 첫 번째 허들이자, 결국 무너져 내린 결정적인 원인 역시 바로 이 경제성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초기, 뉴스케일과 UAMPS가 제시한 전력 생산 단가는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2021년 당시, 프로젝트의 균등화발전비용(LCOE), 즉 발전소 건설부터 운영, 연료 조달, 폐기까지 전 과정에 드는 모든 비용을 총발전량으로 나눈 값은 메가와트시(MWh)당 58달러로 추산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변동성이 큰 천연가스 등 다른 기저전력원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UAMPS 소속 회원사들이 미래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SMR을 선택하고 프로젝트에 참여를 결정하게 만든 핵심적인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글로벌 경제를 덮친 거대한 파도 앞에서 힘없이 부서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작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은 원자재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습니다. SMR이 '소형'이라고는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엄격한 안전 기준(Nuclear Grade)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막대한 양의 고품질 자재와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원자로 압력용기에 사용되는 특수 니켈 합금, 구조물에 필수적인 강철과 고강도 시멘트, 그리고 수많은 배관과 케이블에 들어가는 구리 등의 가격이 지난 수십 년간 유례없는 수준으로 급등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첫 번째 호기(FOAK, First-of-a-Kind)'가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었습니다. CFPP는 상업용 SMR로는 세계 최초였기에,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작사들이 처음 만들어보는 부품을 생산하며, 건설사들이 처음 적용해보는 공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시행착오와 비효율성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또한 수십 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드물었던 미국 내에서는 원자력 분야의 숙련된 건설 인력과 전문 엔지니어를 찾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이는 인건비의 가파른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외부 비용 상승 요인과 FOAK 프리미엄이 결합되면서 CFPP의 예상 건설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2023년 1월, 뉴스케일파워는 시장에 충격적인 수치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프로젝트의 목표 발전단가, 즉 전력판매단가(Target Price)를 기존 58달러에서 무려 53%나 인상된 MWh당 89달러로 상향 조정한 것입니다. 이는 더 이상 '저렴하고 안정적인 청정에너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새로운 가격표는 CFPP가 가졌던 모든 경제적 매력을 한순간에 증발시켜 버렸습니다. 이는 마치 혁신적인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전기차를 5천만 원에 출시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회사가,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는 이유로 최종 출고가를 8천만 원으로 올린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그 차가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한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SMR의 기술적 혁신과 안전성, 유연성이라는 수많은 장점만으로는 이 치명적인 가격 인상을 정당화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기술의 잠재력이 시장의 가장 원초적이고 현실적인 장벽인 '비용'을 넘지 못하며, 프로젝트는 좌초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본론 2: 비싼 전기, 외면하는 고객들: 무너진 수요의 도미노
MWh당 89달러라는 새롭고 값비싼 가격표는 프로젝트의 발주처이자 최종 고객인 UAMPS 회원사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청구서로 돌아왔습니다. UAMPS는 거대 단일 기업이 아닌, 수많은 지방 중소도시와 전력 조합으로 구성된 연합체입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재정 구조는 이들 회원사가 미래에 생산될 전력을 수십 년간 구매하겠다는 '전력 구매 계약(Subscription)'을 미리 체결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즉, 안정적인 수요처를 최소 80% 이상 미리 확보해야만, 그 계약을 담보로 막대한 건설 자금을 외부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프로젝트의 재정적 생존을 위해서는 전체 발전 용량 462MW의 약 80%에 해당하는 370MW 규모의 전력 구매 약속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프로젝트 초기, MWh당 58달러라는 가격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많은 회원사들이 각자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화석연료 가격 변동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안정적인 기저 전력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기꺼이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89달러로 치솟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각 도시의 시장과 시의회, 전력 조합의 이사회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자신들의 지역 주민과 기업에 향후 수십 년간 다른 대안보다 비싼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정치적, 재정적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계산을 넘어, 선출직 공무원들의 정치적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결국 도미노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지고 최종 계약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일부 회원사들은 참여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계약을 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격으로는 도저히 우리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한두 곳의 이탈은 프로젝트의 재정적 안정성에 대한 다른 참여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이는 '과연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완성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연쇄적인 이탈로 이어졌습니다. 목표했던 370MW의 전력 구매 약속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최종적으로 확보한 물량은 목표치의 절반 수준인 200MW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마치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짓기 위해 조합원을 모집하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처음에는 합리적인 분양가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사업이 순조로워 보였지만, 건설 원자재값과 인건비가 올랐다며 시행사가 분양가를 50% 이상 올리자, 부담을 느낀 조합원들이 대거 탈퇴해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아파트의 설계가 훌륭하고 입지가 좋아도, 비싼 가격을 감당할 구매자가 없다면 프로젝트는 단 한 층도 올릴 수 없습니다. CFPP의 실패는 SMR 기술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내놓기 위해서는 기술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최종 고객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가격'과, 그 가격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뼈아픈 사례입니다. 기술 공급자인 뉴스케일과 최종 수요자인 UAMPS 회원사들 사이의 신뢰와 경제적 합의점이 무너지면서, 프로젝트는 이륙에 필요한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본론 3: 거시 경제의 역풍: 금리 인상과 정책의 불확실성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 증가와 수요처 확보 실패라는 직접적인 원인 외에도, CFPP 프로젝트를 둘러싼 거시 경제 환경의 급격한 악화는 이미 위태롭던 난파선에 몰아친 거대한 폭풍과도 같았습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수십 년 만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2022년부터 단행한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프로젝트의 재정적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는 자기 자본만으로 건설할 수 없습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외부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융자를 받아야 합니다. CFPP가 계획되던 초기만 하더라도 제로에 가까웠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불과 1년여 만에 5%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는 곧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조달 비용, 즉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를 들어 50억 달러를 빌릴 경우, 금리가 1%일 때 연간 이자는 5천만 달러지만, 5%일 때는 2억 5천만 달러로 급증합니다. 높아진 건설비에 더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막대한 금융 비용까지 추가되면서,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경제성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되었습니다. 여기에 정책적 지원의 불확실성도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MWh당 최대 27.5달러에 달하는 파격적인 생산세액공제(PTC)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이 보조금은 MWh당 89달러라는 높은 발전 단가를 60달러 초반까지 낮춰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동아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조금은 법안이 통과된 직후였기에 지급의 구체적인 조건, 규모, 시기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또한, 수십 년간 지속되어야 할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담보하기에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세금 정책의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에너지 정책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 또한, 수십 년 후를 내다보고 천문학적인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지방 정부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리스크였습니다. 결론적으로 CFPP 프로젝트는 단순히 비용이 비싸져서 실패한 것을 넘어, '고물가(건설비용 폭등), 고금리(금융비용 증가), 정책 불확실성'이라는 거시 경제의 삼각파도에 휩쓸려 침몰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분석입니다. 이는 SMR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앞으로 SMR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 노력뿐만 아니라, 거시 경제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고, 금리 변동과 같은 금융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변동성이 큰 정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고도로 정교한 재무 및 위기관리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실패가 아닌 값비싼 교훈, SMR의 미래를 위한 제언
뉴스케일파워와 UAMPS의 CFPP 프로젝트 종료는 SMR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장밋빛 환상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혁신 기술'이라는 이름표만으로는 복잡하고 냉정한 시장의 현실을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실패는 결코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경제성의 붕괴, 수요 확보의 실패, 그리고 거시 경제의 거대한 역풍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인이 최악의 시점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SMR 시대의 종언이 아닌, 현실적인 과제와 넘어야 할 장벽을 명확히 확인한 '값비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번 실패를 통해 SMR 산업은 미래의 성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명확한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첫째, 공급망 안정화와 표준화를 통한 획기적인 원가 절감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첫 번째'라는 이유로 모든 비용을 떠안는 FOAK의 함정에서 벗어나,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부품과 설계를 표준화하고, 공장에서 원자로 모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SMR 본연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건설 단가를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춰야 합니다. 둘째, 정부의 더욱 적극적이고 일관된 정책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초기 시장 창출 단계에서는 단순한 세액 공제를 넘어, 장기 전력 구매 계약을 정부가 보증하거나, 국책은행을 통한 저금리 정책 금융을 지원하는 등 프로젝트의 금융 리스크를 낮춰줄 보다 실질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투명하고 현실적인 비용 분석과 리스크 공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UAMPS와 같은 느슨한 연합체보다는, TVA나 미 국방부처럼 단일하고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주체가 첫 번째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것이 초기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CFPP는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실패의 과정에서 얻은 수많은 데이터와 교훈은 앞으로 이어질 전 세계의 SMR 프로젝트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 값비싼 수업료가 헛되지 않는다면, SMR은 언젠가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난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 중 하나로 다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SMR의 진정한 시험은 실패의 잿더미 위에서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